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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학-텍스트의 집합체-에 대한 자세

by 헤헤나 2022. 7. 18.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문학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교과목의 한 종류로서의 의미로 떠올릴 것이다. 

 어렸을 적 동화책을 쥐여주면 순수한 행위로 책을 읽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순간부턴 배워야 하는 국어 관련 교과서를 의무적으로 펼쳐야 하고 책을 읽어오라고 하면 그것도 의무가 돼버린다. 한 마디로 어릴 때처럼 책을 즐길 수가 없다. 오히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부담이고 시간에 쫓겨 대충 그 순간만 해결해버리면 끝이다. 

 결국 문학은 시험을 치러야 하는 과목 중 하나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학교는 읽을거리에 대해 인색하게도 읽고 파악하기만을 강요하지, 즐기기의 여지는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문학작품들에 대해 대단하다느니 유일무이하다느니 하는 감상적 풀이를 늘어놓는다. 결국 문학은 예술의 하위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발을 들여놓는 학생들에게 암기과목의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문학을 정의하자면 '텍스트들의 집합체'다. 그것의 형태는 시, 소설, 수필, 희극, 근래에 들어와 조금 더 넓게 보자면 가사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일례로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밥 딜런이었던걸 상기해보라. 단지 수많은 팬 중 일부가 노벨문학상 심사단에 있었던 건 아니다. 단계마다 추슬러 공정한 심사단의 평가와 토론을 통해 선정되는 자리다. 아마도 그의 가사에 담긴 메시지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변화를 도모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사도 엄밀히 말해 텍스트다. 옛 선조들이 즐기거나 구어체로 내려오는 고대 시조 역시 문학의 한 부분인 것과 같은 양상이다. 이런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사람들이 '즐겼다'는 점이다. 음악도, 그림도, 조각도 사람들이 보고 듣고 즐기기 때문에 예술인것 처럼 문학 역시 읽고 느끼고 즐기기 때문에 예술에 포함된다. 

 노랫말까지 문학이냐는 의견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없진 않다. 문학을 다룰 때 순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물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순수문학은 이른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과 여전히 결을 같이 하는 인간의 보편성, 사회 문제 등을 다루는 현대작품들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장르문학 (내지 통속소설, 대중문학)도 순문학인가에 대한 화두가 뜨거운 가운데, 맞다 아니다 하는 명확한 답을 내놓기는 애매하다. 

 시대도 달라지고 읽는 계층이나 범위도 달라지고 매체도 다양해졌다. 거기다 순문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대중문학임에도 단순함을 넘어서서 인간의 희로애락과 통찰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들을 봤을 때 굳이 순문학이니 대중문학이니 잣대를 들이미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즐기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문학이 요구하는 수준의 형식으로 참된 의미를 담고 인간에게 굵직한 무언가를 남긴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문학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림원은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밥 딜런의 많은 노래는 좋아해도 좋아하는 문학작품이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말할 사람이 얼마 없다. 제일 처음으로 문학을 접하는 환경이 딱딱하달까, 앞서 말한 학교에서 자주 많이 접하는 문학 시간이 부담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수학은 답이 정해져 있는 분야다. 국어의 맞춤법이나 문법은 하나의 규칙으로 정해놓아서 답이 일률적이지만 작품 그 자체인 문학은 그렇지 않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해볼 수도 있다. 작가 역시 특정 목적의 정치적 소설을 제외하면 화두는 던지되 그에 대한 답이나 결말의 여지는 독자들에게 남기는 편이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배우는 문학은 주제, 의미, 사상, 작가의 의도 등을 정해진 답이라는 틀에 가두어놓고 단편적인 해석을 학생들에게 요구한다. 그들은 다른 해석의 여지는 생각도 해보지 못하고 그저 외워야만 한다. 간혹 그 작품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학생에겐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만을 남긴 채 그 수업은 끝이 난다. 한국의 교육 체계상 간편하고 효율적이지만 문학을 음미하고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암기로만 끝내야 하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요즘은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영상매체나 다양한 콘텐츠들을 통해 책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긴 하다. 자기계발서나 비문학이라면 정보를 얻는 것이 주된 목적이니 급한 불을 꺼야 한다면 참고해도 되겠지만 문학은 그런 방식을 지양했으면 한다. 그를 통한 경험은 진정한 이해나 지식이 아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습관을 길들이지 못했거나 시간이 아까워 그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책을 접하기 위함이라면 수긍은 하되 결국 단순한 앎 혹은 깊이 없는 상식일 뿐이다. 문학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작가들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맛있는 밥을 차리듯 뜸을 들이고 호흡을 맞춰보고 썼다 지웠다 지옥과 천국을 번갈아 가는 심정으로 한 줄 한 줄 써나간다. 그런 작품들을 인스턴트 음식 데워먹듯 휘리릭 보고 닫는다면 독자로서 갖춰야 할 예의와 작품에 대한 예의가 결함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덧붙여 재미난 이야기를 앞에 두고서 즐기지도 못하고 외양만 구경하다 지나쳐 간다면 누구의 손해일지는 뻔하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견은 뒤로 하고 한 줄씩 읽어나가다 보면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듯, 그 작품만의 맛이 느껴진다. 그 맛에, 향기에 취해 빠져들다 보면 그 작품 속에서 노닐고 있는 자기 자신이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한바탕 신나게 물장구치고 나와 현실로 돌아와 보면 잠시 멍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기분 좋은 정지상태이고 문학과 소통했다는 방증이다. 누구나 그걸 느낄 수 있고 반복하다 보면 문학이 어떤 것인지 몸과 마음에 새겨질 거다. 그것은 우리를 더 이롭게 함은 물론이거니와 문학의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다. 욕심내지 말고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씩 조금씩... 문학의 손을 잡아보자. 문학에 대한 자세로 이만한 게 어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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