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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by 헤헤나 2023. 6. 25.

아니 에르노 /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단순하다고 simple한 게 아니다. 

 

#수기인지 소설인지

 #그럼에도 문학

 #사실에 기반한 작품

 

(※주관적 감상의 견해일 뿐입니다.)


배경 :  프랑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칼 같은 글쓰기라는 홍보문구에 홀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쓰였기에 칼이라는 섬뜩한 단어를 사용했을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수긍이 갔다.

 

 논리 정연해서 칼같다고 표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무서우리만치 솔직하게 사실적으로 써 내려갔다. 그렇다고 담담한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온갖 감정에 휘둘리고 혼자 상처받다 다시 괜찮아졌다 마치 정신병 환자 같은  나날들을 보낸 자신에 대해 썼는데 그게 또 절절하다. 그 원인은 모두 '사랑'때문이다. 이해는 간다. 오죽하면 '이 죽일 놈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표현도 있을까. 

 

 누군가와 깊이 사랑하는 기간동안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심지어 내가 사는 이유까지- 오로지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는 동안 인간은 잠시 이성을 놓아버린다. 파란 지구별에서 평범하게 살던 내가 익숙했던 내 주위의 것에 멀어져  그 사람과 함께 사랑이라는 새로운 행성에 착지해 모든 걸 처음 겪는 거다. 모든 것의 처음은 두렵지만 궁금하고 한번 맛보면 빠져든다. 사랑하기에 미쳐버리고 사랑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미쳐버리는 극히 개인적인 일을 작가는 -과거의- 그 시간을 붙잡아 결국 책으로 써 내려갔다. 

 


 

 22년도 노벨문학상은 아니 에르노가 수상했다.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인 구속을 드러낸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이 수상의 이유였다. 

 

 작가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제게 일어난 일들, 삶의 과정을 더 이상의 한계는 없을 정도로 관찰하고 객관화하여 글을 썼다. 그런 행위는 담대한 용기와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적인 시선, 외면하지 않음같은, 아무리 문학에 몸담은 작가라고는 하지만 그전에 한 개인으로서 매우 하기 힘든 작업이다. 아무도 보지 않을 걸 알지만 써 내려간 일기장을 내 방 어딘가 꽁꽁 숨겨놓고 훗날 과거의 페이지를 다시 보며 그땐 그랬지,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지만 절대 나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줄 순 없어.라고 곱씹는 게 우리네 인간이다. 반면 아니 에르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생 날 것의 자전적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모되는 것에서 지켜내어 그녀 스스로 칼을 들고 신중하게 다듬고 깎아내 세상에 내보인다.

 

스스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점도 대단하지만 하루하루, 매 순간의 찰나를 놓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솔직히 그렇게 살기엔 피곤한 일이다. 예를 들어 배고프다는 신호가 오면 우린 단순히 배가 고프네, 뭘 먹을까, 이걸 먹자. 하는 단계에서 끝이 난다. 그게 당연하니까. 반대로 아니 에르노는 배고픔도 다르게 느낀다. 이건 어디서 기인한 허기인가? 내 몸속 장기가 때가 돼서 알려주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내 상황에 어떤 결핍의 요소가 굶주림을 호소하는 것일까? 이런 매 순간의 사소하지만 불편함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 내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숙성시키고 매달렸다. 

 

 단순한 열정은 그와 같은 집필방식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불같은 사랑을 음미하고 고찰한 책이다. 그저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 입소문을 위해 집필한 게 아니다. 매 작품이 그랬듯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유물처럼 꼭 남겨두고 싶었을 테고 의미가 있기에 작품으로 탄생시켰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해가 간다. 책의 끝 부분까지 읽고 나서 다시 책 제목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단순하다'의 뜻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함을 뜻한다. 그리고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인 '열정'. 이 두 단어의 결합은 단순한 열정 그 이상을 나타낸다. 어찌보면 욕망에 대한 적나라함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책 내용에 사실적 묘사나 부적절한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작가가 이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랑의 경험에서 기인한 작가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 깨달음이다.

 

 작가는 그녀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말한다.

 

"자, 이게 내 경험이야. 너희들은 어때? 너희도 내 처지가 되어본다면 이렇지 않겠어? 이거 봐, 솔직해지자구.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함으로써 내가 느낀 바는 이런 거야." 

 

 이 얼마나 감사하고 속시원한지 모르겠다. 문학의 통로는 협소한 면이 있다.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써야 하고, 이런 뜻을 담아야 하고, 절대 저런 건 쓰지 말아야 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작품을 내놓으면 독자와 평론가들은 일일이 따지고 든다. 아니 에르노는 그런 그들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다. 특히 단순한 열정 같은 작품은 더더욱. 그럼에도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 경험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힘이 크지 않았을까. 지극히 사적인 경험임에도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한 여자의 마음, 나아가 사랑에 대한 고뇌와 성찰. 

 


 

 꾸밈없고 정제됐지만 내뱉는 한 마디마다 무수한 감정을 일으키는 그녀의 작품은 쉽게 휘리릭 읽고 말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 개인의 사실적인 문제였기에 가벼이 여길 수 없고 제 자신의 일에 대해 담담하지만 호소력있게 써 내려간 작가의 힘은 책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더불어 한 문제에 대해 작가와 나의 생각 차이를 비교해 보면서 독서를 하는 동안 좀 더 적극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의 여정을 통해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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