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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그 외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하야마 아마리

by 헤헤나 2022. 9. 24.

하야마 아마리 지음 / 장은주 옮김 / 예담

죽음의 준비의 끝에서 만난 새로운 생!

#수기 #죽음 #다시 일어남 #라스베이거스 #스물아홉

 

(※주관적 감상의 견해일 뿐입니다)


배경 : 일본 / 시점 : 일인칭 주인공 시점  

 

 일본에서 출판되는 책 중 특화된 미스터리물, 장르물을 제외하고 대부분 수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 중에는 죽음과 연관된 것들이 많다. 주로 시한부, 불치병, 예기치 못한 사고에 관한 내용으로 인간의 감성을 후려치듯 자극한다. 눈물을 뽑고 싶다면 일본 영화나 책을 봐도 무방할 정도랄까. 웬만해선 슬픈 이야기는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져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법도 한데 스물아홉이란 글자가 자꾸 끌어당겼다. 마침 그 당시의 나는 스물아홉을 앞두고 있었다. 아직은 스물여덟... 스물아홉이란 숫자를 달게 되면 세상도 바뀌게 되는 걸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 그리고 상반된 불안이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책은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듯 모습을 나타냈다. 제목을 곱씹을수록 '죽음'이 들어간 것 치고는 담담하고 단단했다. 그 점 역시 내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셈이다. 수기라고 하니 실제로 경험한 일을 써 내려갔다는 뜻인데 실재하는 한 인간의 삶이 대체 어땠기에 죽기로 결심을 했다는 건지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필명 중 '아마리'는 '나머지, 여분'이란 뜻으로 1년의 시한부 기간을 스스로 부여한 데서 나온 이름이다. 

 나이는 이번 생일을 맞이해 스물아홉,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지도 않은 나이. 거기다 관리되지 않은 외모와 몸 상태. 정직원이 아니라 몇 년째 파견사원으로 일하고 있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일상. 갑자기 쓰러진 아빠. 오늘이 생일임에도 축하해줄 사람은 스스로밖에 없는 외로움. 심지어... 한 입 먹으려는 생일 케이크 위 딸기까지 데구루루 방바닥을 구른다. 차오르는 비참함이 그녀를 잠식한다. 싱크대 앞에 서서 현실의 무게감을 지탱하지 못하고 감히 나쁜 생각을 품는 데는 찰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땐 한 손에는 칼이, 그 칼 아래에는 나머지 손목이 놓여있었다. 그것을 목도하는 순간 엄습하는 두려움이 그녀의 손에 쥔 칼을 떨어뜨리게 했다. 동시에 목숨도 제대로 끊지 못하는 실패자라고 자조한다. 그때 마침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환호성이 들려오며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스베이거스. 화려하고 더 이상의 빛남이 없을 것만 같은 빛남의 극치. 

 '저기 있는 사람들 참 부럽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곧이어 드는 생각.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저곳에서 모든 걸 다 겪어본 후에 죽는 거야.' 그날부터 그녀에게 부여된 시간은 딱 1년. 1년간의 그녀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년이란 시간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짧기도, 길기도 하다. 아마리는 그 누구보다도 1년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녀에겐 살아있음의 시한이 뻔히 정해져 있으니까. 시한부지만 피치 못할 사정은 없는 자의적 시한부. 모든 건 라스베이거스행을 위한 행위였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돈과 의사소통이 필수불가결했다. 결과적으로 외국행을 위해 필요한 부분들은 그녀에게 '계획'이란 걸 선사했다. 일과 배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만 했고 한정된 시간은 쪼개고 또 쪼개야 했다. 

 학생일 땐 모르지만 사회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사실 중 하나가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대학생 시절을 떠올려 보면 같은 또래, 같은 이십대지만 일하는 직장인들,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과 수업을 들었다. 직업군도 다양했다. 건축회사 직원, 국세청 직원, 형사 등등 다들 각자만의 사회에 속해있다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면 학교라는 또 다른 세상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한 것이다. 체력과 열정과 끈기, 한 마디로 강한 힘으로 버티고 밀고 나간 거다. 아마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주어진 1년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누군가 당신에게 아마리처럼 살아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가능한 자, 포기한 자. 아마리처럼 가까운 죽음을 앞둔 듯 1년간 열심히 살아봤다면 그 나름대로 깨닫는 점이 당신에게 인생의 선물이 될 테고 중간에 포기했다면 다시금 일어나길 바란다. 포기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포기한 그 시점을 '포기'라는 말 대신 '다시 새로 시작하는 지점'으로 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자, 아마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음 혹은 삶. 결과적으로 저 두 가지 요소만이 인간세계를 이룬다. 죽음은 선택의 여부와 상관없이 조우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다.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마지막으로 모든 걸 경험하고 즐기다 원 없이 죽으리라 계획했던 아마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까지 했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했다. (이쯤 되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인간이 살아간다고 해서 무작정 사는 건 아니다. 가끔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다.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하늘을 보게 되면 이게 참 오랜만이라 감회가 남다른 감정과 비슷하려나. 현실에 맞서고 있다가도 잠깐씩 살아가는 의미, 목표, 꿈 등을 다시 되새기며 버티고 나아간다. 결국 우리 각자가 '아마리'인 거다. 실제의 아마리처럼 1년 뒤 죽음을 계획으로 앞둔 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건 아니지만 다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매일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누군가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누군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마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문득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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