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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저녁 준비

by 헤헤나 2023. 12. 19.

 닫아놓은 안방 문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간간이 흘러나오는 통화 소리가 장장 1시간 만에 멎었다. 곧 엄마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티비 소리와 엄마의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어우러졌다. 개수대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엄마의 부름이 이어졌다.

 “저녁은 뭘로 먹을까? 갈치조림 괜찮아?”

 “엄마 마음대로.”

 “해서 안 먹으면 어떻게 내가 다 먹어. 같이 먹어야 하지.”

 “그럼 해.”

 “근데 느이 아버지는 비리다고 싫어할 것 같네. 뭘 하지?”

 뒤이어 엄마의 저녁 반찬에 대한 혼잣말이 이어졌다. 심도 있는 투덜거림이다.

 시계가 오후 다섯 시 십오분을 가리켰다. 여섯 시면 아빠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거나 때로는 지인들과 어울리다 밤늦게 들어올 텐데 오늘은 일찍 오는 날인 가보다. 시계 초침 움직임이 엄마의 도마질 소리와 딱딱 맞아떨어졌다.

 슬쩍 일어나 주방을 기웃거리자 엄마는 곁눈질로 왜 왔냐고 한다.

 도마에 감자와 파와 호박이 편 가르기처럼 잘라져 자리해있다.

 “뭐야, 결국은 된장찌개야?”

 “왜, 싫어?”

 “그건 아니구. 너무 식상해.”

 “그럼 외국사람 해. 한국인이 된장찌개 먹으면서 식상하다고 하면 안 돼.”

 된장을 뜨면서 말하던 엄마는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정정했다.

 “아니다. 그냥 시집 안 가면 되겠다. 넌 시집가지 마.”

 엄마의 한마디에 마음이 서걱거렸다.

 ‘맘 같아선 이혼하고 싶어. 근데 아직 우리 애들 시집 장가도 안 보냈고... 내가 없으면 가족들 밥도 못 해먹어서 굶어죽어. 나? 나야 뭐 식당을 뛰든 뭘 하든 알아서 벌어먹고 살겠지. 애들이 밟혀. 그게 제일 커. 언니는. 언니는 그렇지 않아?’

 방금 전 통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내가 시집 안 가면, 그럼 엄마는 나랑 평생 살아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

 막 냄비에 된장을 젓고 있던 엄마는 된장이 다 풀릴 때까지 젓고는 썰어놓은 재료들을 무심하게 넣었다. 숙련되지 않을 수 없는 행동거지다.

 “안 괜찮을 건 뭐야. 난 딸자식이 엄마 팔자 따라 사는 거 반대야.”

 식탁에 있던 바나나를 하나 뚝 떼며 물었다.

 “왜, 아빠 때문에 그래?”

 바나나 꼭지 부분에 힘을 주고 주욱 깠다. 싱크대에서 물을 틀어놓고 그릇을 씻는 소리가 내 물음을 방해했는지 엄마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바나나 첫 부분을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몇 번 급하게 씹다가 넘기는데 바나나의 점성이 목구멍을 잡아채며 잘 내려가지 않는 것 같았다. 큼큼거리며 억지로 또 한 입을 베어먹었다. 영 단맛이 덜한가. 바나나치고 맛없는 편이었다. 반 정도 먹고 깠던 껍질을 다시 원상 복귀 시켜 도로 식탁에 두었다. 마침 물소리가 그치고 행주에 손을 닦으며 뒤를 돌아선 엄마의 눈길이 먹다 남은 바나나에 꽂혔다.

 마치 도착지는 식탁인데 하나의 중간 여정처럼 엄마는 가스레인지 앞 된장찌개 냄비 앞을 거쳤다. 뚜껑을 열자마자 솟구치는 찌개의 연기가 엄마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냄비를 젓는 숟가락질은 거침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다시 뚜껑을 닫고는 비로소 식탁에 와서 바나나의 남은 부분을 베어 먹었다.

 “맛있어?”

 엄마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달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사람마다 느끼는 입맛은 다르니까. 그렇게 엄마는 빈 껍질이 된 바나나 잔여물을 굳이 뒷베란다 음식 쓰레기통에 버리러 몇 걸음을 더 뗐다. 나 같으면 그냥 싱크대에 던져 놓겠구만. 엄마는 꼭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중간에 밥솥을 열어 밥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냄비를 열어 얼마나 끓었는지 확인하고 음식 쓰레기통이 얼마나 찼는지 확인하고 빨래통에 빨래가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하고... 엄마에게 이 집은 온갖 확인할 것투성이였다. 그 확인들 덕분에 이 집이 유지가 된다는 걸 이렇게 한 번씩 깨닫게 된다. 다만 그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부끄럽게도.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 엄마는 다시 한번 된장찌개 냄비를 열었다. 간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간이 맞아?”

 갸웃거리며 내게 숟가락을 내보였다.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 숟가락을 이어받아 간을 봤다. 항상 엄마가 한 음식을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간을 볼 때면 하나의 중요한 순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번 입을 다시고 말했다.

 “음. 역시 이 맛이야. 엄마가 해준 건 이 세상에 누구도 못 따라와. 최고야!”

 매번 나는 이런 식이다. 사실이니까. 그리고 엄마 역시 쑥스러움과 의기양양함이 가미된 표정으로 활짝 웃는다.

 “난 아무리 해도 이 맛이 안 나던데. 엄만 나한테 된장찌개 먹이기 위해서라도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야겠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별 소릴 다 듣겠다는 듯 눈을 한번 흘기며 핏 한번 웃었다.

 “나이 든 엄마 계속 부려먹겠다는 거야?”

 “왜, 시집가지 말라며? 그럼 평생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나야 좋지.”

 앞치마에 손을 한번 닦은 엄마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냈다.

 “그래. 네 능력만 되면 엄만 진심으로 반대 안 해. 결혼하는 게 정답이 아니야.”

 “그럼 엄마만 믿고 결혼 안 해야지.”

 그릇에 계란 다섯 알을 깨서 휘젓던 엄마는 또 한 번 핏 웃었다.

 “엄말 믿어서 뭐해. 엄만 아무 능력 없어. 넌 널 믿어야지.”

 “엄말 믿는 게 날 믿는 거야.”

 엄만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응? 하고 물어왔다.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서 응원해 줘. 그럼 그게 나한텐 힘이고 능력이야.”

 다시 한번 내가 응? 하고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붓는 엄마를 재촉했다. 팬에 노란 계란 물이 촤악 펼쳐지며 치이익거리는 소리가 대답 없는 엄마를 대신했다.

 훨씬 전에 나보다 작아진 키높이의 대상에게 착 달라붙어 이마를 문질러댔다. 머리든, 목이든, 어깨든. 그 어디에도 엄마의 냄새가 물씬 났다.

 “어우! 세 살 먹은 애야? 왜 이리 달라붙어.”

 “엄마니까 그렇지. 응? 어디 안 갈 거지?”

 기어코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의지가 보였는지 엄마는 비로소 대답을 내뱉었다.

 “알았어. 안 가. 가스불 위험해, 저리로 가있어.”

 그제서야 허리를 한 번 꽉 안고 떨어졌다.

 꼭 대답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미 서른도 넘은 딸은 세 살 아이처럼 엄마를 붙들었다. 이기적인 딸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어디 가지 말라는 확답까지 받아내려 하다니.

 엄마라는 존재는 다른 어떤 것으로 통용되거나 대체할 수 없다.

 두 음절 안에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의 극치가 담겨있다.

 그런데 엄마를 엄마로 만든 존재들은 어리석게도 그 아름다움을 모르고 산다. 기꺼이 감사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이기만 한다.

 통통거리는 도마 소리에 다시 엄마를 돌아봤다.

 “아빠랑 민이 놔두고 엄마랑 나 둘만 도망갈까?”

 내 말에 잠깐 도마 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들린다.

 “갑자기 웬 도망?”

 “그냥... 가끔 답답하잖아.”

 내 말이 끝나고 부엌에서 푸흐흐 소리가 났다.

 “글쎄... 마음은 가라고 하는데 정작 몸은 그러질 못하네.”

 “만약에 도망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도망시켜 줄게.”

 도마가 탕탕거리는 소리와 엄마의 웃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역시 딸밖에 없네. 고마워.”

 “내가 더 고마워.”

 집 안 가득 계란프라이와 된장찌개 냄새가 넘실거렸다. 엄마가 만들어낸 따뜻한 냄새.

 이 냄새를 지키고 싶고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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