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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의 종말

by 헤헤나 2023. 12. 19.

 삶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왜 서로들 친절할 수 없을까.

 이야기 속에서 갈등 요소가 빠질 수 없듯이 사람 관계도 갈등은 도사리고 있다.

 다만 이야기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재미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작가가 일부러라도 꼭 발생시킨다면, 사람 간의 갈등은 그냥 갈등 그 자체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그럼에도 갈등은 수시로 유발하기 일쑤다. 말 한마디, 한순간의 표정과 몸짓에서 언제든지 부정적인 감정은 피어날 수 있다. 지레짐작이든 오해든, 갈등은 갈등일 뿐이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사더라도 손님과 직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유발할 수 있다.

 손님이 생각하기론 '왜 이 직원은 손님을 대하는 게 딱딱하지?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닌 걸 아는데도 기분이 별로야.'

 직원이 생각하기론 '왜 이 손님은 행동이 꼭 날 무시하는 것 같지? 내가 한낱 알바라고 얕보는 건가?

 그렇게 둘 각자의 생각으로 소리 없지만 무거운 분위기로 한순간이 완성된다. 물론 친절의 끄트머리는 찾을 수가 없다.

 각자 진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웃음으로 서로를 대했다면 어땠을까. 조그마하더라도 뭔가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친절을 바라기엔 개인적이고 각박하고 바쁜 세상이 돼버렸다. 나 혼자 친절해봤자 호구처럼 여겨질 거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점점 친절은 뒤로 밀려나고 남은 건 의무적인 의사소통이고 기계적인 서비스용 웃음뿐이다. 깔끔하긴 하지만 찝찝한 깔끔함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친절이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 너머 그 어디에선가 우러나오는 행위가 아닐까. 그 마음 너머로 가기엔 시간과 힘을 낭비하기 싫은 것도 인간이 가진 본능이기에 제일 빠르고 편한 기계적 수준의-굳이 친절까지 베풀 순 없지만 그렇다고 서비스직의 기본을 망각하진 않는- 정도에서 멈춘다. 친절을 보인다 한들 본인이 그걸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상대방이 먼저 친절을 보이지도 않으니까. 어느 누가 감히 먼저 굳이 보이려 하겠는가.

 일상 도처에 깔린 어딜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기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의례적인 인사가 들려오고 필요한 걸 챙겨 그들과 나와의 기계적 의사소통(?)을 끝낸 후 문을 열고 나온다. 그저 이런 식으로 나를 시스템 안에 끼워 맞출 수밖에 없다.  그 시스템에선 친절을 강요하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에 둘뿐이지.

 이쪽은 재화를 얻는 소비자고 저쪽은 재화를 얻기 위해 일을 하는 판매자다. 엄연한 사업이고 일이고 근로인데 어느 누가 일하는 게 본능적으로 좋을까. 거기다 친절까지 하라고? 강요하기엔 엄한 일이다.

 이렇게 사적으로 진심에서 나온 친절이란 요소는 점점 옅어지고 보기 힘들어져 간다. 사회가 점점 기계적인 시스템화될수록 인간이 만들어내는 다정하고 정적인 요소들은 모양이 파괴된다. 그렇게 되든 말든 어쨌거나 사회와 지구는 돌아간다.

 내가 생각을 바꿔야만 하는 걸까? 친절을 바라지 말 것. 이 시스템에 익숙해질 것.

 그러기엔 집 앞 자주 가는 편의점을 갈 때마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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